■ 문학기행

 

남기형 동인댁 방문기


'문학기행' 하면 문학사적으로 뚜렷한 족적(足跡)을 남긴 장소를 찾아나선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동인댁을 찾는다는 건 적이 어색한 면이 있다. 그러나 막상 이런 행사를 마치고 난 후, 동인들은 오늘처럼 해야 참다운 '문학기행'이라며 입을 모았다.
작년 4월에 양평 '시마을' 동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여 1박 2일로 양평 ∼ 춘천 코스를 다녀오면서 회원들을 기쁘게 하여 어깨를 으쓱했던, 조선형 동인도 거듭 이 자리의 빛남을 칭송했다.
9월 6일 저녁 6시, 참석자를 도착한 순서대로 소개하자면,
1차 ; 이수용, 조선형, 남기형, 현종헌, 변영숙, 이영숙, 김광진
2차 ; 송경종, 이동백, 김명옥
3차 ; 김은희, 주세훈
등이다.
변영숙·이영숙은 신입 회원이고, 주세훈은 한동안 뜸하다가 불쑥 고개를 디밀어 회원들을 감동시켰으며, 이동백은 송경종이 미금초등학교 교감으로 초임 승진·발령 받아 동행한 동료 교사로서 문단의 중진 시인이다.

이수용·남기형 동인, 문단에 데뷔

시인의 생명은 역시 생명력 있는 시를 생산해내는 데 있다.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거들먹거리는 이들이 주위에 많은 세태(世態)이다 보니 그런 걸 절실히 느낀다.
이번 '문학기행' 자리가 더욱 뜻깊었던 건 바로 "이수용·남기형" 동인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평소 부지런히 습작활동을 하던 위 두 동인이 금년에 나란히 "시조문학"과 "현대시조"라는 순수문예지를 통해 문단에 데뷔하는 저력을 보였다.
특히 이수용 동인은 "리빙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독특한 이력(履歷)을 가지고 있으면서 35년 간 오로지 문학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시인 중의 시인이었다. 고교 시절에는 문예반 활동을 활발히 했고, 인하대학교 ROTC 출신의 해병대 장교로서 월남전 파병(越南戰 派兵)을 거쳐 대기업 임원까지 지내다가, 최근엔 성남문화원 이사(理事)로서 조용히 만년(晩年)을 보내며 시작(詩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외양(外樣)을 보면 두보(杜甫)의 고결한 인품을 지녔고, 문학적 기질을 보면 가히 한국의 에밀리 디킨슨(숨은 詩人)이라 불러 모자람이 없다.
 
◆ 신인상 당선 작품(시조문학, 1999년 가을호)
만 남
이 수 용
 
겉절인 들꽃 내음 긴 긴 날 그리워라
분당호 비단 잉어 세상 살라 노닐다가
낯설은
만남 그 앞에
어울리면 고향일레
처마 밑 걸린 구름 솔잎에 빗질하고
연못 속 노니는 달 날 찾아 잔에 어려
이 가슴
조선 혼 담아
사랑 엮을 속 깊이
왼 종일 산그리메 햇살로 빛 뿌리고
노을진 자리마다 보일 듯 저 수풀이
호수옆
물기둥 둘레
전설 지킬 돌마각*
*돌마각 ; 분당 중앙공원 광장에 세워진 누각
 
심사평 ; 이 작품은 현대인의 망향(望鄕)을 생각케 한다. 아파트 숲 사이에 자리한 인공호수 물 그리메엔 어김없이 유년시절을 만날 수 있고, 선조들의 애련한 전설을 손잡아 보게 된다. 앞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시어의 광맥을 부지런히 찾아 나서는 신인의 자세를 당부한다. (리태극, 김 준, 한춘섭)
 
◆ 신인상 당선 작품(현대시조, 1998년 가을호)
山 寺
남 기 형
 
山門 높이 열리고 법고소리 울려나면
뒤따라 木魚의 울음 푸른 산그늘에 젖고
골짜기 내린 물안개 아스라이 밝아라
법당앞 손을 모아도 구름은 그냥 가고
천만겁 두른 인연 또 찬연한 저 후광
부처님 자비의 미소 분향을 받으신다.
남한산 깊은 골에 바람소리 향그럽다
처마끝 풍경소리 햇무리로 감돌면서
빈 뜨락 긴 산허리는 法悅로 가득찬다.
 
심사평 ; 남기형씨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서 詩를 가르치며 또 詩를 쓰시는 분이다. 당선작 <山寺>에서 보여주는 바 시조의 정격을 따르며 그의 佛心을 정중히 고백하고 있음은 읽는 사람으로 부처님 앞으로 이끌고 있지 아니한가.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새로운 감동을 주는 詩作을 기대하는 바이다.
(장순하, 이문형, 선정주)
 

화려한 가문(家門) 속으로

남기형 동인의 가족사(家族史)를 보면 그 화려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웬만한 뿌리를 지녔다고 하는 가문에서도 요만큼도 모자람이 없는 그야말로 명문 중의 명문가(名文家)이다.
경기도 광주읍(廣州邑)으로 들어설 때부터 그 위압감에 동인들은 움추러들 수밖에 없다.
(1) 부친 남경우 선생
4남 2녀를 두셨고, 남기형 동인은 그 중에서 6번째 막내이다.
남경우(南慶祐) 선생은 자유당 초기에 38세 나이로 민선(民選) 초대 경기도 교육감을 지냈고, 임기를 마친 후에도 안양중 교장·성남여중 교장 등을 지내셨다.
한마디로, 한국 현대교육사의 태두(泰斗)이자 산 증인이시다.
(2) 백부(伯父) 남광우 박사
난정(蘭汀) 남광우(南廣祐) 박사는 두말할 나위없는 국문학계의 거봉(巨峰)이다.
한글 전용론자 허웅 박사와 더불어 한글·한자 혼용론자(混用論者)로서 우리나라 국어의 양대 산맥을 이끌어 온 분이시다.
경북대·중앙대 교수를 거쳐 인하대 총장의 임기를 마치고 1997년(當 77세)에 돌아가셨는데, 그의 업적은 너무 눈이 부셔 차라리 인물 사전을 찾아 음미해 봄이 바람직할 듯 하다.
(3) 맏형 남기심 박사
남기심(南基心) 박사 역시 현재 연세대 교수이자 완형보문법의 권위자로서 국어 문법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 하권(下卷) "새말의 탄생" 단원에 그의 글이 수록돼 있다.
(4) 사모님 배기명 여사
배 여사는 충북 괴산 출생으로서, 성남서고 국어교사로 재직 시 인하대학교에 같이 연수 들어갔다가 만나 연애결혼했다고 한다. 탈렌트 황신혜 같은 빼어난 용모와 신사임당 같은 지성의 소유자이다.
아마 처음 만났을 때 당시 인하대 사범대 학장이셨던 남광우 박사와 가문 얘기가 양념삼아 슬쩍 들어갔을 듯. 남기형 동인의 그윽한 인품 + 화려한 가문 → 무조건 나 책임져.
남편 성실하고, 아들 딸 모두 공부 잘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걱정거리가 없어 보인다.
(5) 족보 其他
남기형 동인은 의령남씨 26대 손이다.
선조 중에는 조선 개국공신으로서 영의정을 지낸 남 재 선생이 있고,
현재 5형제 중 맏형 남기심 박사를 비롯하여 둘째 남기항, 셋째 남기헌, 그리고 막내 남기형 동인 본인이 있다. 은행원인 셋째분 말고는 모두 교직에 몸담고 있는 교육가족이다. 4촌 이내를 통틀어 13명이 분필가루를 마시며 살아가고 있다.
그 중 매형 윤홍로씨는 문학평론가로서 단국대 총장을 역임했다.
 

깊어가는 성하(盛夏)의 밤, 그리고 문학의 열기

 

모란(牧丹)에서 3번 국도를 타고 광주(廣州) 쪽으로 가다가 갈마터널을 지나자마자 중앙저수지를 끼고 지하차도로 왼편으로 5분 정도 가면 조그만 마을이 나온다. 새로 개발이 한창인데, 끝 부분에 이르면 골프 연습장이 있고, 그 뉴서울 컨트리클럽 한쪽 산자락 켠에 남기형 동인의 집이 200여 평 위에 아담히 자리하고 있다.
언뜻 보면, 워렌 비티와 나탈리 우드 주연의 영화 "초원의 빛" 촬영 셋트 무대 같지만, 자세히 내부를 들여다 보면 서너 평 남짓한 정자(亭子)와 더불어 향나무, 소나무, 모과나무, 매화나무들로 어우러진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짓게 한다. 특히 붓글씨로 천장을 도배한 정자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운치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그 속에서 인생을 이야기했고, 문학을 토론했다. 한쪽 켠에서는 김광진 총무가 땀을 쏟아내며 바베큐를 구웠고, 변영숙·이영숙 신입 회원들은 오늘 첫나들이 행사에서 기존 회원들의 눈밖에 날까 두려운지 눈썹이 휘날리도록 반찬을 날랐다.
김은희 예비 장학사님의 제안으로 선뜻 추진된 자리여서 "작품 품평회 시간"이 되자 '누가 이런 데까지 작품을 들고 오나' 하고 다소 반신반의했으나, 의외로 준비된 게 많았다.
두 분 영숙 회원들과 이수용·조선형 회원들의 작품 낭송과 품평회가 있었다.
비는 올 듯 올 듯 하다가 끝내 내리지 않았다.
교원대 강의 갔다가 헐레벌떡 달려온 김명옥 회장, 모처럼만에 찾은 주세훈 동인,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시인 나그네 이동백 선생 등과 더불어 저문 광주의 산 속에서 바비큐 불빛을 가슴으로 감싸 안으며 기념촬영을 할 때는 모두들 감격에 젖어 목이 메이는 듯 했다.
동인들이 사라져갈 때, 산언저리에 앉아 있는 남기형 동인의 아담한 전원주택에서 새나온 희망의 불빛은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섞여 어둔 밤하늘로 하염없이 번져오르고 있었다.